토끼굴은 터널처럼 곧게 이어지는듯 하더니 갑자기 아래로 푹 꺼져버렸다. 멈추어야 겠다는 생각조차 할 시간이 없이 갑작스러워서, 상황을 알아차렸을 때 앨리스는 이미 아주 깊은 우물속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우물이 깊어서인지, 아니면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앨리스는 주위를 둘러보고 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할 정도로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가장 먼저, 앨리스는 아래를 보고 어디로 떨어지고 있는 건지 알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옆으로 눈을 돌려 우물 벽이 찬장과 책장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도며 그림들도 여기 저기 걸려 있었다. 앨리스는 아래로 내려가는 도중에 한 선반에서 "오렌지 마멀레이드 "라고 쓰인 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러나 몹시 실망스럽게도 병 안은 텅 비어있었다. 앨리스는 병을 그냥 떨어뜨리면 아래에 있는 혹시 누가 맞아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떨어지면서도 간신히 다시 찬장에 병을 집어넣었다.
오렌지 마멀레이드

“이 정도로 떨어져 봤으니, 이제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건 아무 것도 아니겠는걸! ” 앨리스는 생각했다. “가족들이 모두 내가 얼마나 용감하다고 생각하겠어! 아니, 내가 우리집 꼭대기에서 떨어져도, 난 그냥 별 것도 아닌양 아무 말도 안할꺼야!”(이건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stair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끝이 있기는 한 걸까! 앨리스는“지금까지 내가 몇 마일이나 떨어진 거지?”하고 소리내어 말했다. “아마 지구 가운데로 가까이 가는 중일거야. 어디 보자, 아마도 4천 마일 쯤 내려온 것 같아 - ”(이처럼, 앨리스는 학교 수업 시간에 이런 류의 여러 가지 것들을 배웠다. 물론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지식을 자랑하기에는 매우 좋은 기회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말하는 것은 좋은 연습이 된다.) “그래, 대략 그 정도 거리 일거야. 그러면, 내가 있는 곳의 위도경도는 어떻게 나타내지?”(앨리스는 위도나 경도가 뭔지는 하나도 몰랐다. 그저, 말하기에 아주 근사한 단어라고 생각했다.)
위도경도

앨리스는 곧장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구를 곧장 뚫고 지나가는 건지도 모르겠어! 머리를 아래로 향하고 걷는 사람들 사이에 내가 불쑥 나타나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워 보일까! 반감자들이겠지.”(앨리스는 이번엔 듣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적절한 단어같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곳이 어느 나라인지는 물어봐야 할 거야. 실례합니다, 아주머니, 여기가 뉴질랜드인가요? 아니면 오스트레일리아인가요?”(이렇게 말하면서 앨리스는 무릎을 굽혀 예의바르게 인사하려고 했다. 떨어지는 와중에도 허공에서 무릎을 굽히는 멋들어진 인사라니! 당신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러면 나를 얼마나 무식한여자라고 생각하겠어. 아니지, 절대 물어보지 않을거야. 아마 나라 이름이 적혀 있는 곳은 없는지 찾아봐야겠네.”
무식한여자애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딱히 달리 할 게 없어서, 앨리스는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밤에 다이나가 날 무척 그리워하겠지. 그렇고 말고!”(다이나는 고양이이다.) “티타임에 다아나에게 우유 주는 걸 잊지 않으면 좋겠는데. 내 사랑스러운 다이나야! 너도 여기 같이 내려 왔으면 좋았을걸. 공중에 쥐가 없긴하지만, 박쥐는 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건 쥐랑 아주 비슷하잖아. 근데 고양이박쥐”앨리스는 약간 졸음이 와서 마치 꿈을 꾸는 듯이“고양이가 박쥐를 먹나? 고양이가 박쥐를 먹나?”하고 중얼거렸다. 가끔은 “박쥐가 고양이를 먹나?”하고 말하기도 했지만. 앨리스는 두 질문 모두 답할 수 없었지만, 어느 쪽이든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앨리스는 깜빡 잠이 들고 있었고, 급기야 다이나와 손을 잡고 산책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앨리스는 꿈에서 다이나에게 사뭇 진지하게 “다이나야, 이제 사실을 말해줘. 박쥐를 먹어본 적 있니?”하고 물었다. 그 때 갑자기, 쿵! 쿵! 소리를 내며 앨리스는 나무가지와 마른 잎 뭉치에 떨어졌다. 다 내려온 것이었다.
고양이박쥐